

“바람이 분다”는 항공기 설계가 호리코시 지로(堀越二?)의 일대기를 다룬다.그는 어릴 적, 잡지에서 이탈리아의 민항기 설계자 카프로니(Caproni)에 대해 읽게 되고, 직접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이상(理想)에 사로잡힌다. 수재였던 그는 동경대학 항공학과에 진학하고, 2차 대전 당시에는 미쓰비시에 발탁되어 이후 일본군의 상징이 된 제로센(ゼロ?) 전투기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미야자키의 영화의 줄거리는 호리코시가 제로센을 만들기까지의 갖은 굴곡과, 제로센의 첫 비행과 더불어 이승을 떠난 박복한 아내 나호코와의 사랑을 병치한다.

네티즌들이 “바람이 분다”에 반대하는 이유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비행기가 가미가제(神風)에 사용되었고, 일본을 전쟁의 피해자로 묘사했기 때문이다.사실관계에서 틀린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감독이 영화에 부여한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기에 나올 수 있는 평가다. 영화의 내용을 영화 외적인 정치적 편견에서 벗어나 내재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 영화는 제국주의를 미화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대세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미약한 존재인 인간을 보여주고, 이 비극을 야기한 국가적 차원의 광기를 비판하는 반전 영화이다. 이러한 작품에서 호리코시라는 미시적 차원의 개인과 일본제국이라는 국가를 동일화한다면 올바른 작품해석이 제한될 것이다.

실제로 제로센을 개발하며 호리코시의 삶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호리코시가 아름답다고 여겼던 것은 두 가지다. 비행기와 그의 아내 나호코였다.그러나 전쟁을 통해 그는 두 가지 모두 잃게 된다. 남편을 내조하느라 요양을 하지 못한 그의 아내는 각혈 끝에 병사(病死)했다. 그의 자부심이었던 아름다운 비행기는 사람 대신 폭탄을 태웠다. 그리고 이 비행기들은 활주로를 떠났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공중전이 일어나는 장면에서 붉은 일장기가 그려진 제로센기(機)들은 끊임없이 추락하고 파괴된다. 그리고, 가미가제의 공격을 통해서 그가 추구한 아름다움은 자멸한다. 폭력과 광기어린 시대정신에 호리코시의 순수한 꿈들은 철저히 더럽혀진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줄곧 반전, 반파시즘의 입장에 섰다. 예컨대 “바람이 분다”의 기자간담회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며 일본이 한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사과해야함을 역설하기도 했다. 과거의 영화 “붉은 돼지”에서는 ‘파시스트로 살 바엔 돼지가 되는 게 낫다’고 주장했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번 영화에서 2차 대전에 공로를 세운 자를 위인적인 주인공으로 삼는 모순적 선택을 감행했다. 감독은 충분히 논란을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꿈을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사람을 표현하고 싶었다면 호리코시를 모델로 하되, 가상의 인물을 설정해도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기존 작품의 반전 성향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감동과 교훈을 주었을 것이다. 결국, 논란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위험한 선택을 피하지 않았던 점은 흠이라 할 수 있겠다.

일본이 제국주의적 정책을 통해 한국 사람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와 아픔을 주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일본을 부정하는 하나의 프레임에 집착하여 그들의 모든 사항을 편견적으로 바라본다면 훌륭한 예술작품의 가치마저도 폄훼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하겠다. 영화 “바람이 분다”도 마찬가지다.중요한 것은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이다. 감독의 국적과 문화배경 등이 주는 편견적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 영화가 전달하는 평화와 반전의 메시지를 정 반대로 오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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